비개발자 연구실

이름 넣으면 사인 만들어 주는 서비스, 왜 멈췄나

이름만 넣으면 실제로 쓸 만한 흘림 사인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를 만들려다 멈췄습니다. 가장 쉬워 보였던 서비스가 가장 어려웠던 이유 — 폰트부터 규칙 엔진, 이미지 생성 AI까지 네 번 시도하고 결국 중단하기로 한 과정을 정리했습니다.


Easy SNS 다음으로 시작한 실험은 “사인공방”이었습니다. 이름을 넣으면 실제로 쓸 만한 흘림 사인(서명) 후보를 몇 개 추천해 주고, 획순 보기·따라 쓰기 연습·종이 인쇄까지 도와주는 서비스였습니다.

처음엔 제일 쉬운 축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.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, 저는 이 프로젝트를 실패로 보고 중단했습니다. 가장 쉬울 거라 생각했던 서비스가, 막상 해 보니 가장 어려운 서비스였습니다.

왜 쉬워 보였을까

이름을 멋진 손글씨 폰트로 보여주고 기울기·밑줄만 조절하면 되지 않을까 — 처음 생각은 그랬습니다(v1). 실제로 만들어 보니 그냥 예쁜 폰트일 뿐이었습니다. 사람이 직접 쓴 느낌이 전혀 안 나서 사인으로 쓰기엔 실용적이지 않았습니다.

시도 1: 디자이너 손길 데이터 (v2) — 폐기

사인 디자이너가 실제로 쓴 획 데이터를 받아 쓰는 방법도 생각해 봤습니다. 그런데 사람을 섭외하는 방향은 제가 원하는 게 아니었어서, 바로 접었습니다.

시도 2: 규칙으로 사인을 “설계”하기 (v3.0) — 전부 탈락

다음은 한글 자모의 골격과 사인 디자인 문법을 코드 규칙으로 만들어, 이름 하나에서 후보 12개를 자동으로 뽑아내는 방식이었습니다. 자모 골격 51개, 배치 틀 6가지, 기울기·단순화·곡선화 같은 변형까지 다 만들었습니다.

결과는 **12개 모두 “쓸 만하지 않다”**는 판정이었습니다. 규칙만으로는 사람이 실제로 손으로 쓴 사인의 “느낌”을 흉내 낼 수 없었습니다.

시도 3: AI가 그린 사인을 음절 단위로 잘라 붙이기 (v3.1) — 많이 나아졌지만 부족

AI에게 음절 단위로 사인 견본을 그리게 하고, 그 모양을 획 데이터로 바꿔 음절 라이브러리를 만든 뒤 이름에 맞게 조합하는 방식을 시도했습니다. 규칙 엔진보다는 분명 나았지만, “ChatGPT가 통째로 그려 주는 수준에는 한참 못 미쳤습니다.” 음절을 이어 붙이다 보니 이름 전체의 리듬과 흐름이 뚝뚝 끊겼습니다.

진짜 벽: 이미지 생성 AI 없이는 안 됐다

세 번 시도 끝에 결론은 하나였습니다. “이미지 생성이 아닌 방식은 포기한다.” 사인의 질감과 흐름은, 사람처럼 한 번에 쭉 그려내는 이미지 생성 AI가 아니고서는 흉내 낼 수 없었습니다.

문제는 여기서부터였습니다. 저는 이 프로젝트를 Claude Code로 만들고 있었는데, Claude Code 자체에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능이 없습니다. 그래서 외부 이미지 생성 서비스를 하나씩 찾아 직접 시험해야 했습니다.

한글을 제대로 그리는 모델이 거의 없었다

  • Canva 이미지 생성: 한글 글자 자체를 다른 글자로 바꿔 그렸습니다(“김”이 “강”·“갈”·“감”으로).
  • Cloudflare Workers AI(무료, 하루 1만 뉴런 한도): FLUX.1 schnell, FLUX.2 klein, Leonardo, Stable Diffusion 전부 이름 글자를 틀리게 썼습니다. 그나마 가장 근접했던 FLUX.2 dev로 “김도윤”을 그려 봤습니다.
GPT Image 계열로 생성한 '김도윤' 흘림 사인 12종, 모두 정확하고 서로 다름
GPT Image 계열 — 12장 모두 "김도윤"을 정확히, 서로 다른 스타일로 썼다
Cloudflare Workers AI의 FLUX.2 dev로 생성한 사인, '김도윤'이 '김도윈'으로 틀리게 나왔고 16장이 모두 같은 모양
Cloudflare FLUX.2 dev(무료) — "김도윤"이 "김도윈"으로, 16장이 전부 같은 모양

같은 이름, 같은 요청이었는데 결과가 이렇게 갈렸습니다. 무료 모델 중에는 한글을 믿을 만하게 그리는 게 없었고, 유료 GPT Image 계열을 외부 CLI 도구로 저품질 등급(장당 약 0.25크레딧)까지 낮춰 시험했을 때만 ChatGPT에서 보던 수준의 “이름 하나 × 12가지 흘림 사인”이 나왔습니다.

그러니까 “쉬울 줄 알았던” 이 서비스는 사실 무료로는 거의 불가능하고, 유료로 하더라도 비용·속도·개인정보까지 한꺼번에 풀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. 이름을 외부 API로 보내야 하니, 처음 세운 “이름은 기기 밖으로 안 보낸다”는 원칙부터 다시 손봐야 했습니다.

그래도 건진 것

막다른 길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.

  • AI가 그린 이미지를 획 데이터로 되돌리는 변환기는 잘 만들어졌습니다. 세선화 → 그래프 → 획 순서로 바꾸는 방식인데, ChatGPT 수준 이미지를 모양 그대로 획 데이터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. 나중에 이미지 생성 AI를 쓰더라도 “획순 보기”·“따라 쓰기” 기능은 이 변환기로 살릴 수 있습니다.
  • 공개된 손글씨 서명 데이터셋(IAM, GPDS, Hugging Face의 서명 데이터 등)은 상업적 이용 제한이나 출처 불명 위험이 있어 처음부터 쓰지 않기로 걸러 뒀습니다. 나중에 저작권 문제로 서비스를 접는 것보다, 애초에 안 쓰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.

멈추기로 한 이유

여기까지 오는 동안 같은 질문에 몇 번이나 부딪혔습니다. “이 비용과 복잡도를 감수할 만큼, 이 서비스가 꼭 필요한가?” 이미지 생성 API를 유료로 붙이고, 이름을 외부로 보내는 개인정보 원칙까지 다시 쓰고, 생성 비용이 광고 수익보다 커질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데 — 그 모든 걸 넘어설 만큼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.

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여기서 멈췄습니다. 처음엔 “이름 받아서 예쁜 글씨로 보여주면 되는” 가장 쉬운 축의 서비스라고 생각했는데, 막상 해 보니 AI로 뭔가를 만드는 서비스 중에서 가장 어려운 축이었습니다. 쉬워 보이는 것과 실제로 쉬운 것은 다르다는 걸, 이번에 제대로 배웠습니다.

정리

  • “이름 → 사인 이미지”는 이미지 생성 AI 없이는 품질이 나오지 않습니다. 폰트·규칙 엔진·음절 조합을 다 시도했지만 전부 부족했습니다.
  • 무료 이미지 생성 모델 중 한글을 제대로 그리는 건 거의 없었습니다. 유료 GPT Image 계열만 확실했습니다.
  • Claude Code는 이미지를 직접 못 그리므로, 이런 프로젝트는 외부 이미지 생성 서비스 선택과 비용 계산이 처음부터 핵심 과제가 됩니다.
  • 쉬워 보이는 아이디어일수록, 실제로 손을 대 보기 전까지는 난이도를 알 수 없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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